6.25 한국전쟁 영국 참전용사 - 죽으면 한국에 묻힐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영국서 참전용사의 삶 담은 다큐멘터리 상영
영화기획자 "그들의 희생에 경의 표하고 싶었다"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나는 죽으면 한국에 묻힐 것이다.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2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남부의 킹스턴시(市) 시내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가 끝날 무렵에 흘러나오는 한국전 참전 영국군 노병 제임스 그룬디 씨(83)의 한 마디가 상영관에 맴돌았다.

이날 상영된 다큐멘터리는 6·25 참전용사의 영웅담도, 참혹했던 전쟁의 순간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와는 전혀 달랐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한 영국인 '할아버지'가 여든을 넘긴 나이에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한국과의 인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담았다.
한국전에 참전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영국군과 연합군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목격한 그는 전쟁 후 수십 년이 지나서 또 다른 임무 하나를 스스로 부여했다.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했다가 전사자들의 사진을 모아 기념공원 안에 전시해놓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영국에 돌아와 신문에 전사자 사진을 찾는다는 광고를 낸 게 시작이었다.
가족들로부터 전사자들의 사진을 전달받으면서 그는 사진과 함께 그들의 잊혀진 사연들을 한국에 전하는 메신저가 됐다.
부산의 한 여학교를 찾은 그는 학생들에게 전사자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은 당시 19세였다. 화요일 참전했는데 다음날인 수요일 전사했다. 여기 사진 속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 지 3주일 만에 한국에 갔고 5일 만에 지뢰를 밟아 숨졌다. 그가 숨지고 곧바로 영국에서 그의 딸이 태어났다"고 했다. 여학생들은 슬픔에 찬 표정이었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보낸 그는 맨체스터에서 홀로 살고 있지만 매년 한차례 한국을 찾아 한국에서 갖게 된 새로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룬디 씨의 살아가는 얘기와 모습에 이날 영화관을 찾은 십여명의 한국전 참전 전우들은 때때로 웃음을 터트리며 감상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1년을 보낸 참전용사 존 존스 씨는 "기대 못했는데 정말 훌륭한 영화였고 재밌게 봤다"면서 반겼다.

영화를 기획한 신보나 씨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지금 살고 있는 얘기들을 통해 그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고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기 위해 제작했다"고 소개했다.
영국에서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린다. 더욱이 참전용사들이 대부분 고령인 까닭에 영국인 참전용사연합(BKVA) 회원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혈액암 판정을 받은 그룬디 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한국에 대한 사랑은 필름 속에 남아 전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