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가족/보훈유가족

독립유공자 최원득 지사의 후손 찾습니다

깨알석사 2015. 3. 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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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주년 삼일절이 다가오는 가운데 울산 중구가 병영 3·1만세운동에 참여했던 한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특히 지난 2005년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대통령표창)이 추서됐으나 10년이 지나도록 후손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27일 울산 중구와 병영삼일사봉제회(회장 김기환)에 따르면 최원득(1900~1930) 애국지사는 19세가 되던 해인 1919년 4월4일 열린 병영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병영 3․1만세운동은 지역 청년들의 주도로 병영동 일신학교(현재의 병영초등학교)에서 주민과 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축구경기 시축을 신호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시작됐다.

이틀간 열린 만세운동 과정에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4명이 순국하고 최 지사를 포함한 22명이 체포됐다.

일제는 구속된 22명에게 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이 가운데 17명에게는 6개월~2년의 징역형을, 최 지사 등 5명에게는 태형 90도(대)를 선고했다.

김기환 회장은 "당시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한 유학생들이 고향인 울산으로 내려와 한 달간 준비 끝에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높게 차 올린 것을 신호로 일제히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며 "많은 애국지사들이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는 등 갖은 고초를 겪었다. 갑오개혁때 야만적인 행위라며 폐지됐다 일제때 부활한 태형은 얼마나 충격이 심한 지 이 형을 받고 10년도 못 살고 돌아가신 분이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유족을 찾지 못하다 보니 최 지사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2007년 봉제회에서 발간한 '병영3·1독립운동사' 자료에 따르면 최 지사는 아호가 송제(松齊)이고 본관이 경주이며, 1900년 12월11일 태어나 1930년 2월4일 30살의 나이로 숨졌다.

본적은 당시 주소로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서리(현 중구 서동)이며, 가족관계는 아버지 최용만·어머니 박수임의 장남으로, 부인 박난이 여사와 1남1녀를 뒀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 회장은 "병영만세운동을 참여했던 26명이 건국훈장, 애국장 등 독립유공자 국가포상을 받았다"며 "이들 중 순국한 엄준 열사는 당시 부모나 처자식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지난 2005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된 최 지사만이 유일하게 10년이 지나도록 후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구청에 협조를 얻어 등본을 뒤지고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대부분이 작고한 상태라 후손을 찾을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중구는 병영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른 26명의 애국지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87년 동동에 삼일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제를 지내고 있다.

김 회장은 "유족회 차원에서 보훈청으로부터 대신 훈장을 수령하려 했지만 친인척이 아닌 이상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반드시 후손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최 지사의 후손 또는 이와 관련된 사람은 울산보훈지청(052-228-6515) 또는 울산 병영삼일사봉제회(052-281-0314)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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